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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and Environment Research > Volume 57(3); 2019 > Article
18~19세기 동아시아 여성의 가체문화와 의미

Abstract

This study examined what meaning East Asian women showed in their costume history through a discourse of hair adornments such as wigs and that Gache was not just a luxury decoration. In addition, we examined Gache hair trends with Eonjeun-meori (braid wraps around the entire head) in the Joseon dynasty (Korea), Gigye (旗髻) hair in the Quing dynasty (China) and Mage (髷) hair in the Edo period (Japan) during the 18th and 19th centuries. The significance of the phenomenon of East Asian Gache culture in the 18th and 19th centuries was analyzed from the internal desires of women. The details are as follows. First, the magnification by the hair decoration was identified with self-authority and used as a sign to express self-respect or a desire for self-esteem. The extended Gache was an external body extension to raise self-authority and increase activeness. Second, self-satisfaction through showing off was associated with a women's search for identity. There was excessive consumption to boast status, wealth and femininity, but the mania continued because women obtained psychological satisfaction by feeling that their sacrifices for the Confucian order were compensated. Third, the frenzy of Gache was accepted as a way for women to resist social regulations and find themselves as main participants in social activities. Showing their appearance in East Asian Gache culture was a way of inner self-searching and a process for women to find themselves as a social entity.

서론

18~19세기 동아시아는 각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다양하게 분출되고 갈등이 해소되면서 근대화로 이어지는 의미 있는 시기였다. 유교적 가치관에 오랜 기간 예속되었던 여성에게는 자신의 자율성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변환의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변화의 바람은 동아시아 여성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중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서양의 근대 초기 즉 16~18세기의 정치, 경제적 특징들과 18세기 중국이 놀랄 만큼 유사하다는 소위 ‘유라시아의 유사성 이론(Eurasian Similarity Thesis)’을 제기하였다(Perdue, 2005). Mio (2004)는 18세기의 상황이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 인도, 동남아시아에서도 나타난 현상이라고 하였다. 18~19세기 상업발달, 유럽과 동아시아 교역증가에 따른 문화교류 측면을 부각시킨 복식관련 연구도 다수 있다(Kim & Bae, 2014; Yim & Kim, 2007).
18~19세기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여성의 가체문화를 살피는 것은 여성의 머리꾸밈의 가치와 의미를 다각적으로 짚어봄으로써 사치현상으로 일관되던 기존의 연구시각을 달리하고 싶은 생각에서다. 18~19세기 여성의 머리꾸밈 열풍은 동아시아에 공통적으로 만연했던 유교적 비판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연구자들이 사치풍조라는 견해에 성급하게 동의해버린 결과라는 늦은 깨달음도 한 이유이다.
광풍에 가깝게 휘몰아쳤던 여성의 머리꾸밈 현상이 18~19세기 서양을 넘어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복식문화의 한 현상이었다는 연구의 시각은 이러한 연구배경에서 출발한다. 18~19세기 동아시아에서는 여성의 가체문화가 동일한 시대에 다른 공간적 배경을 두고 동일한 성격의 양식으로 유행하였다는 점과 정치체제, 경제부흥, 시대사조 등 유사한 시대적 상황이 사회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특성이 있다. 동아시아 여성에게 전통적으로 요구되었던 유교적 관념을 극복하고 가체를 통해 파격적인 머리꾸밈을 하였던 용기와 대항의 내적동인에서 가체문화의 특성과 의미를 찾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18~19세기 동아시아 각국에서 성행하였던 가체양식 중 조선(朝鮮)의 얹은머리, 청(淸)의 기계(旗髻), 에도(江戶)의 마게(髷) 등 유행 전개상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특성을 조망하고자 한다. 특히 18~19세기 동아시아의 가체문화는 여성의 복식문화에 대한 능동적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자기 권위, 자기 만족, 자기 찾기 등 여성의 정체성 확립에 초점을 두고 접근, 의미를 분석하고자 한다. 연구방법은 18~19세기 동아시아 국가인 조선, 청, 에도를 중심으로 여성의 머리꾸밈에 대한 문헌고찰, 유물분석을 통해 진행한다.

18~19세기 동아시아 유사성과 여성의 가체 유행

18~19세기 유럽과 동아시아, 혹은 동아시아 전반에서 발견되는 사회문화적 변화와 그 안에 내재된 유사성은 이미 역사학을 비롯한 관련 학문에서 주목받았다. 서두에서 언급하였듯이 Perdue (2005)는 중국과 유럽의 정치, 경제 상황과 전개과정이 매우 유사함을 밝혔다. 또한 Rawski (2004)은 18세기 서유럽과 중국이 여러 면에서 유사성을 갖는데 특히 경제적 성장, 조세의 수입 증가, 행정의 중앙집권화, 복속국의 문화융합 등을 근거로 하였다. 18~19세기 유라시아의 유사성 이론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러한 견해는 동아시아 연구자의 후행연구를 통해서도 꾸준히 뒷받침되고 있다. Han (2012)은 18세기 유럽과 중국의 여러 특징들 가운데 일부는 동시기 조선과도 유사점이 발견된다고 지적하였다. 군주권 강화 시도와 일부 경제정책이 관련되어 있다는 관점이다. 즉 중국 중심의 유교, 한자문화권의 중화질서 안에서 머물렀던 한국, 중국, 일본은 유럽 열강의 대항해시대 이후 서구와 동아시아 사이에 놓인 지리적 장벽이 동시에 허물어지고, 서구의 공법체제와 동아시아의 예의체제, 주권국가체제와 왕조체제의 대립과 충돌의 장이 되었다(Baik, 2004). 18~19세기는 서구 열강이라는 공통적 외부요인에 의해 동아시아의 질서 변동이 일어났으며, 서민, 여성문화를 비롯한 사회문화 전반에서 개혁적 변화현상이 유사하게 대두되었다.

1. 조선 여성을 둘러싼 변화

18~19세기의 조선은 동아시아의 격변 속에서 전란으로 황폐화된 국토를 재건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영ㆍ정조대의 탕평책에 의한 왕권강화와 문화전성기를 구가한다. 이러한 가운데 실학이 대두되면서 조선의 실학자 유형원, 이중환, 유수원 등은 사민의 구분은 귀속적 요소보다 성취적 요소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사민평등관(Lee, 1988)은 여성의 자기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영향을 끼쳤다.
무엇보다 18세기 이후 조선은 기술, 시장, 제도의 발전과 인적자본의 형성을 토대로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상공업이 중심이 되고 도시가 성장, 발전함에 따라 인구가 도시에 밀집되었다. 농촌으로부터 유입된 인구가 도시 하층민으로 정착되면서 종래에 큰 중요성을 갖지 못했던 상인이나 수공업자 집단이 크게 늘어났다. 이들이 분화하고 정착함으로서 자본을 축적하는 부상(富商)을 양산하였다. 경제적 변동은 기존 양반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지식과 예술이 서민계층에 폭넓게 공유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18세기에는 천주교가 전래되어 영세를 받고 서학에 눈을 뜨게 되었다(Table 1). 그리고 교육의 저변이 확대되었다. 18~19세기 여성의 교육은 지식생산을 수반하는 전문적인 수준의 독서가 사회에서 진행되었고 더이상 유교 이념적 가치를 수용하고 소비하는 형태에서 머물지 않아(Jo, 2005), 여성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내적, 외적 환경이 무르익고 있었다. 서민의 학문에 대한 열의는 물론 학문의 수준이 『소학(小學)』과 같은 기초 교화서를 넘어 보다 고차원적인 경지에까지 미치고 있었다(Kim, 2012). 18세기 이후 상대적 약자였던 여성과 서민은 경제적으로 윤택해졌을 뿐만 아니라 교육적 기회 확대와 추구로 조선 사회의 한 축으로 성장하였고 문화유행을 주도할 수 있게 되었다.

2. 청 여성의 권리 신장

청의 건국은 명(明)이 이민족 국가였던 원(元)을 몰아내고 한족의 습속을 부흥하고자 한 제반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든 이민족 국가의 재건이었다. 18~19세기 청은 강희, 옹정, 건륭제가 통치하던 번영의 시기였다. 이 시기 정치적으로는 동아시아 조선, 에도와 같이 중앙집권력을 강화하고 문화정치가 펼쳐진 시기이다. 18~19세기 청은 동아시아는 물론 유럽과의 교역도 매우 활발하였다. 동인도회사의 상선이 중국에 수시로 드나들었고 파리에는 중국무역공사가 설립되었다. 무역물품은 차(茶)가 주류품이었고 차 무역에 소요되는 자본금의 충당을 위해 아편이 수입되어 아편전쟁(1840~1842)의 빌미를 제공하였다(Table 1). 그러나 활발한 국제교역은 18~19세기 청을 상업과 시장, 도시가 비약적으로 발달할 수 있게 하였다.
청에서는 한족과 만주족의 통혼이 원칙상 불가능 하였으나 18세기에 이르러서 돈 많은 만주족과 한족 여성이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여성이 절개를 잃을 경우 부형과 친족까지 피해가 가는 것을 막고자 시행되는 너무 이른 정혼과 강제적 수절이 폐단을 만든다는 문제인식이 형성되었다. 따라서 유식한 집안에서는 여성이 성년이 된 뒤에 비로소 혼인을 하는 변화가 나타났다(Kim, 2005). 여성의 정절, 열(烈)이라는 유교적 관념이 과연 최고선인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18세기 이후 19세기까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던 전족(纏足) 반대운동도 이러한 맥락에 있다(Table 1). 원매(袁枚, 1716~1798) 등은 천여 년 동안 계속된 전족에 대한 비판을 통해 지금까지 제기하지 않았던 여성의 존엄성이나 고통을 도외시했던 점을 지적하며 여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드러냈다.

3. 에도 여성의 자유분방함

에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에 의해 개설된 막부체제이다. 센고쿠지다이(せんごくじだい)라고 하는 100여 년의 전국시대(戰國時代) 이후 에도막부에 이르러서야 통일국가로서 기틀이 확립되었다. 18세기 이후 에도는 통일 국가체제가 견고하였고 네 개의 교역을 위한 도시창구를 두어 대외무역을 막부가 완전히 관장하였다. 네 개 도시에서는 각각 동북아시아, 명과 청, 조선, 네덜란드를 통한 구미와의 교역이 바다를 넘나들며 활발히 이루어졌다. 밀무역도 매우 성행하였다. 에도는 청과 조선을 비롯한 네덜란드와의 교역을 통해 다양한 문물을 수입하고 외부의 지식을 공유하며 부를 축적하였다. 상인이 중심이 된 에도시대 시장경제, 유통체제는 전국시대 말기 형성된 서민문화의 싹이 활짝 필 수 있게 하는 튼튼한 기반이 되었다(Park, 2014).
18~19세기 에도는 생사를 수입하고 면직물을 직조하는 등 섬유산업이 눈에 띄게 발전하였다. 경제발전에 따라 예술문화에서의 괄목할만한 성장이 있었고 문화를 즐기는 계층이 상인과 서민 그리고 여성으로 확대되는 등 이전 시기와 구별된다. 특히 유곽(遊廓)문화는 신분제 사회의 해방구 역할을 하였고, 유녀(游女)를 중심으로 문화적으로 세련된 사교와 유흥이 여성의 자기 표출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유곽을 통해 회화, 다도와 도자기 문화가 교류, 발전하였고 살롱에서 관람할 수 있는 가부키(歌舞伎) 풍속이 생겨 서민문화가 성장하였다. 가부키는 사람의 시선을 끌 정도로 독특한 복식과 머리모양이 특징으로 여성의 복식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교양인이 급증하고 상인계층인 죠닌(町人)이 부를 축적하여 오락과 여가를 즐길 시간이 많아지면서 우아한 유희 즉 유예(遊藝)에 대한 지식과 수요가 늘어났다. 18~19세기 동안 문화 담당자와 향수자가 여성 및 서민으로 비약적으로 확대되면서 상공업의 발달로 축적된 부가 여성의 자유로운 문화 분출구를 만드는데 기여하였다.

4. 동아시아의 가체 유행현상

18~19세기 동아시아 여성의 머리꾸밈 유행은 동시대 사회문화적 변화에 기반한다. 유행은 사회 혹은 집단 구성원 다수가 선택한 행동양식이나 사상적 조류, 물질 혹은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일시적, 집합적으로 표출되는 현상(Cho, 2010)이기 때문이다. 18~19세기 동아시아 가체 유행의 동인은 서양문물의 접촉, 충격, 거부, 수용 등의 과정에서 유사한 양상으로 감지된다.
18~19세기 동아시아 사회는 서구열강의 침략으로 정치제도적 충격, 국제교역 활성화와 상인계층 부상에 따른 경제적 번영, 천주교 유입, 여성 교육의 확대 등 공통의 변화를 겪는다. 이러한 가운데 조선에서는 천주교의 신해박해(1791)가 일어났고, 청에서는 양무운동(1860), 태평천국의 난(1864) 등으로 사회가 격변에 휘말린다. 에도에서는 네덜란드를 통해 유입되었던 서학 중 특히 의학서의 번역(1770~1774)이 이루어졌다. 동아시아 왕권강화를 위한 기조 속에 메이지유신(1866)도 가능하였다(Table 1).
18~19세기 동아시아의 유사성은 변혁의 외적동인에 영향을 미쳐 궁극적으로 동아시아 여성에게 공통된 내적성장의 동인을 제공하였다. 격동의 18~19세기 동아시아에서는 가체의 유행현상이 유사하게 나타났으며 그 시기는 유행의 성장기를 거쳐 성숙기에 이르기는 복식유행의 맥락과 흐름을 같이 하였다. 복식유행은 사회, 정치, 경제, 기술, 문화 등에 의한 외적요인에 의해 ‘도입기→성장기→성숙기→쇠퇴기’라는 수명주기를 거치는 데, 당시의 유사한 사회문화적 동인은 여성이 자아정체성을 찾고, 유행욕구를 분출시키는 가체 유행현상으로 나타났다. 복식의 유행주기처럼 가체를 통해 확대된 새로운 머리스타일이 점차 확산되었고, 여성 사회집단 간의 동조현상이 열풍처럼 일어나면서 사회적 포화상태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 속에 여성의 내적동인이 발현되었다.

18~19세기 동아시아의 가체 열풍

1. 조선의 얹은머리와 가체금지령

의례와 사회적 구별을 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가체가 점차 하나의 풍조를 이루어 18~19세기 조선에서 매우 성행하였다. 가체를 이용한 머리모양은 다양하게 불렸으나 일반여성이 즐겨 하였던 가체머리를 ‘얹은머리’라고 한다. 얹은머리는 Lee (1998)가 『조선복식고(朝鮮服飾考)』에서 머리카락을 뒤통수에서 머리 앞쪽으로 돌려 끈을 앞머리 중앙에 감아 꽂는 양식이라고 처음 설명한 이래 두상에 결발하여 올린 머리양식을 통칭하게 되었다. 가체를 해도, 하지 않아도 두상에 머리를 올린 양식은 얹은머리로 불린다. 얹은머리는 기혼여성의 머리양식이며 미혼여성의 ‘땋은머리’와 대별된다.
조선시대 가체를 더한 얹은머리는 시대에 따라 몇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 가체를 한 머리카락을 두상에 감아올린 것은 16세기 이후이다. 조선 초기에는 머리카락을 모아 두상부에서 고정하고 양쪽 뺨으로 늘어뜨렸다(Figure 1-1). 말 그대로 ‘얹은머리’ 형태였다. 16세기 이후가 되어서야 얹은머리는 머리둘레에 감아 올려 두상 중심에서 고정하게 된다(Figure 1-2).
둘째, 18세기에 이르러 체발은 본격적으로 세 가닥 이상으로 땋아 올렸다. 조선 초기 체발은 한 가닥이나 두 가닥으로 꼬는 방식이었다. 두 가닥 땋기방식은 윤덕희(尹德熙, 1685-1776)가 그린 《독서하는 여인》에서 확인된다(Figure 1-3). 두 가닥 땋기는 다소 느슨할 수 있으나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김희겸(金喜謙, ?-?)의 《석천한유(石泉閒遊)》는 영조 24년(1748년) 작품으로 화폭 속 여성의 체발을 땋는 방식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았으나 가체량을 감안하여 얹는 양식을 살피면 두 가닥 꼬기방식으로 보인다(Figure 1-4). 반면 신윤복(申潤福, 1758-1814)의 《미인도》는 체발을 세 가닥으로 나누어 쫀쫀하게 땋아 올렸다(Figure 1-5). 18세기 이후 가체량이 확연이 많아지면서 나타난 머리땋기 방법이자 얹은머리의 변화 포인트이다. 신윤복의 《미인도》는 제작년도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처네를 쓴 여인》(1805)과 동일 화첩에서 분리된 것으로 판단되는《가야금 줄매는 여인》(Korea JoongAng Daily, 1985b)에 묘사된 여인과 같은 가체양식이다. 따라서 신윤복의 《미인도》에 표현된 가체양식은 19세기 초반으로 가늠할 수 있다. 작가미상의 《미인도》(Figure 1-6)와 신윤복의 《단오풍정(端午風情)》(Figure 1-7)의 가체양식도 세 가닥으로 땋아 감아 올렸다.
셋째, 18세기 이후 얹은머리는 비대칭 양상이다. 조선 초기부터 18세기 이전까지 얹은머리는 대부분 대칭양식이었다. 그러던 것이 가체량이 많아지고 무거워지면서 가체가 이마와 귀를 가리고 턱선까지 내려왔다. 이로 인해 많은 양의 가체를 얹는 모양이 다양해졌다. 가체를 고정하기 위해 쪽을 짓는 마무리를 어떻게, 어디에 하느냐에 따라서 비대칭의 묘미가 생겼다. 가체의 무게감이 비대칭양식으로 인해 율동감이 생기면서 보완되는 효과도 주었다. 윤선도(尹善道, 1587-1671)의 종가인 녹우당(綠雨堂)에서 발견된 《미인도》(Figure 1-8) 역시 세 가닥 땋기로 단단히 가체를 감아 올렸으나 크기가 매우 과장되어 비대칭으로 올려졌다.
얹은머리가 풍성하고 볼륨감 있는 가체양식으로 변화하면서 새로운 유행풍속을 만들었다. 18~19세기 열풍처럼 휘몰아친 가체의 유행은 조선의 여성에게 전환기적 영향을 미쳤으며 또한 많은 사회적 이슈를 만들었다. 각종 폐단으로 인해 조선의 조정은 관련 사안을 심각하게 논의하였다. 가체금지에 관한 내용은 심지어 문과 시험의 책문(策問)으로 출제될 만큼 폭넓게 의견을 구하는 사안이기도 하였다. 한편으로는 규방에 있는 여성의 일까지 국왕이 일일이 금지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의견도 제기되었지만, 가체가 사회질서 전반을 위협하는 사치로 간주되면서 규제와 금지를 해야 한다는 중론이 모아졌다(Chung, 2011).
가체금지령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는 영조 25년(1749)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 최초의 기록을 살펴볼 수 있으며, 정조 20년(1796)까지 이에 관한 여러 차례의 토론이 진행되었다. 당시 얹은머리 열풍이 얼마나 대단하였는지에 대한 반증임과 동시에 여성의 머리양식에 대한 직접적이고 유일한 금지령이라는 점, 실행에 대한 논의가 영조와 정조대에 걸쳐 비교적 장기간 지속되었다는 점에서 복식사적으로도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가체금지령은 정조 12년(1788) ‘가체신금사목(加髢申禁事目)’을 제정함으로서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정조의 강력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18세기 조선의 가체풍속을 잠재우지 못했고 결국 실패하였다.

2. 청대 기계의 유행

기계는 청대 만주족 여성의 머리양식이다. 청의 만주족은 ‘머리카락을 남기려는 자는 머리를 남길 수 없는’상황으로 한족을 압박하였고 만주족의 치발(薙髮; 머리둘레를 깍고 정수리 부분만 머리카락을 남겨 땋는 방식, 변발이라고도 함)을 강요하였지만 여성의 경우 제약이 덜했다(Han, 2016). 한족 여자의 경우는 규제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명대 머리모양과 복식을 계승할 수 있었다. 반면 만주족 여성은 한족 복식과 머리모양이 금지되었다. 따라서 청대 여성의 머리모양은 만주족과 한족 상호 간에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각각의 고유 머리모양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만주족은 사회를 군사적으로 재편하여 만든 조직인 팔기군(八旗軍)에 따라 만주인들은 거의 모두 팔기 중 하나에 반드시 소속되었다. 부녀자도 예외없이 기(旗)에 속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부녀의 머리장식은 기계 또는 기두(旗頭)로 불리게 되었다. 일자두(一字头), 양파두(两把头), 가자두(架子头), 대랍시(大拉翅)와 같이 기계의 형태를 본 따 부른 다양한 용어를 포괄한다.
청은 만주족이 최상위 계층이었고, 궁중 여성과 귀부인을 비롯한 일반 만주족 여성의 머리모양인 기계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청대 초기 기계는 비교적 간단하였는데 빗을 때 통상적으로 머리를 꼭대기까지 쓸어 넘기고 양쪽으로 구분하였다. 정수리에서 빗질하여 평평한 형태의 상투가 되게 한다(Figure 1-1). 이후 편방(偏方), 옥잠(玉簪)을 꽂고 다양한 꽃모양의 비녀를 삽식하였다(Figure 1-2). 특히 편방은 비녀의 일종으로 편평하고 긴 막대형이다. 보통 편방의 한 끝은 꽃모양로 되어 있는데, 나뭇잎 모양 장식이나 구슬을 매달 수 있고, 때로는 양 끝에 모두 나뭇잎 모양 장식을 더하기도 한다. 편방의 재질로는 금, 옥, 대모(玳瑁) 및 각종 향나무 등이 있다. 그리고 남은 후두부 머리카락은 제비꼬리 형태로 정리한다. 이를 특별히 일자두 또는 양파두라고 불렀다.
18~19세기 청대 가경(嘉慶, 1796~1820)년간 기계는 더욱 확대되고 성행하였다. 기계를 더 크게 만들기 위해 철사로 만든 테두리를 심으로 넣기 시작하였다. 대나무를 넣기도 하였다. 양쪽 계를 높이 받혀서 쌍각형을 만들고 머리모양을 부풀려 보이게 하였다. 이를 가자두라고 불렀다. 『초주일곶(草珠一串)』에서 “가자라고 칭해지는 머리모양은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다. 뇌후에 1척까지 길다. … 근래에 여성들은 머리카락에 두 개의 가자를 삽입함으로서 쌍각형과 같이 머리카락을 묶는데 이를 가자두라고 한다.”라고 하였다(Zhou & Gao, 1988).
19세기 함풍(咸豐, 1851~1861)년간 기계는 한족의 송빈편계(松鬂編髻), 여의루(如意头) 등 고계(高髻)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았다(Gao, 2001). 또한 한족 여성들도 만족주의 치파오(旗袍)와 함께 기계를 따라하면서 양쪽 계양의 쌍각은 끊임없이 커졌다. 기계는 얼핏 보기에 지붕을 머리에 얹고 다니는 느낌을 주었는데,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부풀린 기계를 비판한 글들이 많은 문집에서 발견된다. 부피가 커짐에 따라 무게를 이길 수 없었던 기계는 더이상 체를 사용하지 않고 보다 가벼운 검정색 견직물로 대신하였다. 계양을 만들기도 쉽고 착용도 편리해 유행은 빠르게 확산되었다. 검정색 견직물로 만든 기계에는 금속세공으로 만들어진 잠, 채를 대신해 견직물로 만든 견화가 가식되었다. 또한 술장식이 더해졌는데 이를 대랍시라고 하였다(Figure 1-3). 명칭처럼 큰 날개가 꺾여 있는 모양새이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서태후(慈禧太后, 1835~1908)의 사진에서 대랍시를 착용한 모습이 확인된다. 황태후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대랍시의 인기는 매우 높았다.
유행의 순풍을 탄 대랍시는 점점 더 고대해졌고 양쪽 쌍각은 끝을 모르게 확장되었다(Figure 1-4). 대랍시의 유행은 18세기를 넘어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대랍시가 확대됨에 따라 양각에 집중되었던 장식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정수리 중앙에 삽화하는 방식으로 변화되었고 형태적으로 훨씬 안정감을 주었다. 열풍처럼 일어났던 대랍시의 유행도 근대화 영향 속에 자연스럽게 퇴행되었다.

3. 에도 마게의 발달

일본 여성의 머리모양은 머리카락을 묶지 않은 채 가체를 하여 땅에 끌릴 정도로 길게 늘어뜨린 수발(垂髮)을 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그러나 전국시대 수많은 전란을 겪으면서 아즈치모모야마(安土桃山, 1574~1600)시대에 이르러 비로서 긴 머리카락이 불편하다는 인식이 생겨났고 황실과 공가(公家)의 여성이 뒤로 늘어뜨린 머리카락을 끈으로 간단히 묶거나(Figure 1-1), 머리다발로 둥글게 고리를 만들면서 마게가 시작되었다(Figure 1-2).
완전한 결발형 머리양식을 가르키는 마게는 상투 또는 계(髻)를 의미하며 틀어 올린 머리형태로 와게(わげ)라고도 한다. 에도 건립과 함께 수발양식의 풍습이 결발양식으로 바뀌는 대전환점을 맞이하였다.
에도시대 가부키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오쿠니(阿国)는 남자의 습속이었던 상투인 마게를 하고 바지를 입고, 새로운 스타일의 춤을 추었다. 오쿠니의 가부키 의상도 매우 혁신적이었으나 마게 머리모양은 더욱 특별하여 카라와마게(唐輪髷)라는 이름이 붙여졌다(Aramata, 2000). 마게의 카라와(唐輪) 부분은 하나가 아니라 둘에서 셋, 또는 넷으로 나뉘었다. 머리에 꽃잎을 삽식한 것과 같은 화려한 마게는 순식간에 유행을 일으켰고, 유녀들이 모방하면서 보다 보편화되었다.
에도시대 마게가 정착된 데에는 유곽과 유녀의 역할이 컸다. 최고의 기녀를 일컫는 ‘타유(太夫)’의 마게는 40종 이상이었다고 전해진다(Amino, 2017). 그래서 유곽의 타유나 기녀의 이름을 딴 마게가 여성들 사이에서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에도 초기에는 마게를 중심으로 머리 올리는 방법이 4가지 유형으로 정착되었다. 효고마게(兵庫髷)(Figure 1-3), 시마다마게(島田髷)(Figure 1-4), 카츠야마마게(勝山髷)(Figure 1-5), 코가이마게(笄髷)(Figure 1-6)이다.
효고마게는 머리를 둥근 모양으로 높이 세우고 머리카락의 뿌리를 삼단으로 감아 붙인다. 기혼여성이나 노처녀 등이 주로 애용하였다. 시마다마게는 효고마게보다 마게의 고리를 작게 한 것으로 마게 중간쯤을 가는 모토유이(元結) 등으로 묶는 것이다. 18세기 이후 다양한 마게의 근간이 되었고, 에도시대를 통틀어 여성들이 가장 좋아한 마게이다(Amino, 2017). 카츠야마마게는 묶었던 머리카락 끝을 앞으로 향해서 둥글게 얹은머리를 만든 것으로 유녀 카츠야마(勝山)가 묶은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코가이마게는 궁중의 궁녀와 어전(御殿), 궁중, 쇼군, 다이묘의 시녀로부터 발생한 머리모양이다. 효고마게, 시마다마게, 카츠야마마게가 유녀 및 가부기 연기자로부터 시작된 것과 차이가 있다. 궁중에서 하는 머리가 유행하게 된 데에서 고쇼후마게(御所風髷)라고도 하였다.
4가지 마게양식을 기본으로 18~19세기에는 타보(髱; 마게를 올리고 남은 뒷머리)와 빈(鬢; 귀밑머리)의 다양한 변화로 인해 마게가 다양해졌다. 타보사시(髱さし)를 고안하여 후두부를 다양하게 장식하였고, 머리 중앙에는 네(根)라는 뼈대를 둥글게 세워 마게가 흔들리지 않게 하였다. 특히 마게의 귀밑머리를 꾸민 양식 중 토로빈(燈籠鬢)이 매우 유행하였는데, 형태가 옆 얼굴과 옆 머리카락 사이의 공간이 생겨 등롱(燈籠)의 갓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Figure 1-7). 타보와 마찬가지로 고래 수염과 자라 등갑, 감색 종이로 감은 구리 철사 등을 이용하여 체를 붙이고 자신의 취향에 맞게 각도도 조절할 수 있었다.
에도막부에서는 수차례 금지령을 내려 여성의 마게를 규제하려 하였지만 마게를 하고 화려하게 꾸며 올리는 풍습은 계속되었다. 18~19세기 타보와 빈의 적용 방법이 세분화됨에 따라 마게는 도리어 광풍에 가까울 정도로 발달하게 된다. 볼륨이 커진 마게와 균형을 맞춰 빗, 비녀 등 머리장신구의 크기도 커지게 되고 삽식된 가짓수도 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러한 양상은 19세기 초 시마다마게와 토로빈을 한 미인도에서 확인된다(Figure 1-7). 체를 더한 마게가 확대된 만큼 커다란 대모갑(鼈甲)의 빗과 비녀를 꽂아 화려한 가체양식을 완성하였다(Figure 1-8).
4. 동아시아 가체의 조형적 특성
동아시아 가체는 조선, 청, 에도의 사회문화적 의미가 반영되어 시각적 현상을 통해 반영되었다. 형태적 조형성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외형상의 특성은 상(object)을 통하여 우리에게 인식되며 시각적 반응을 개념화한 것이다. 18~19세기 동아시아 가체는 ‘확대’라는 공통된 조형성을 바탕으로 형태, 색채, 소재의 구체적인 양식에 따라 비례, 균형, 리듬, 통일의 조형원리에 따라 결정되는 조형적 특성(Oh & Lee, 1990)에서 차이점을 드러낸다.
조선의 가체는 인모만을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소재의 차별점이 있다. 가체를 대신하여 족두리, 화관 등이 가체금지령과 동시에 제안되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청의 기계나 에도의 마게처럼 미리 만들어진 머리양식을 쓰는 형태가 아니다. 법령의 시행이 엄중하였던 궁중에서만 거두미가 일명 떠구지로 대체되었다. 가체만을 이용한 머리모양은 확대하여 꾸미는데 한계가 있었고, 엄청난 머리카락을 정리하기 위해 땋아 올린 특징이 있다. 개개인이 땋아 올렸던 가체는 대칭과 비대칭, 안정감과 리듬감의 조형성을 동시에 나타냈다. 개성이 있는 얹은머리 형태가 자연스럽게 다양해졌다. 진한 흑색의 인모를 선호하였고 붉은색의 댕기를 드리거나 뒤꽂이를 꽂아 세련된 조형미를 보였다.
청의 기계는 완전한 대칭 형태를 바탕으로 균형과 통일의 안정감이 있다. 조선의 가체와 달리 검정색 견직물을 이용해 착용이 훨씬 편리하였다. 그러나 소재의 변화에 따라 형태가 고착화되어 조선의 가체에서 느낄 수 있는 리드미컬한 다채로움은 기계에 가식된 장신구로 대신하였다. 장식은 좌우 대칭형으로 전체적인 조형에서 안정감에 중점을 두었고, 거대한 대립시에 장식된 꽃은 중앙에 위치하여 균형감을 유지하였던 특징이 있다.
에도의 마게 역시 대칭 형태가 중국의 기계와 유사한 조형적 특징을 갖는다. 효고마게, 시마다마게, 카츠야마마게, 코가이마게 등 에도시대 대부분의 마게는 대칭을 통한 균형과 통일감을 특징으로 한다. 19세기에 이르러서 과도한 장식이 오히려 가체의 확대에 일조한 부분이 크다. 네를 통해 뼈대를 세우고 머릿기름과 철사 등을 이용하여 미리 만들어진 가체를 두상에 덧붙였다는 점에서 조선의 가체와 다르다. 청의 기계처럼 형태가 유지된 가체를 탈부착함에 따라 개성보다는 만들어진 가체의 유행에 따랐다. 확대된 마게에는 크기가 커진 머리장신구가 많이 가식되어 화려하고 장식적인 특성이 있다.

18~19세기 동아시아의 가체문화와 의미

동아시아 여성의 가체문화에 대한 연구는 사치풍조의 측면에서 다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당시대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와 논지가 더해졌다. 18~19세기 번영의 시대에 가산을 탕진할 정도로 머리치장에 몰두하였던 여성상이 자리 잡아왔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동아시아 여성의 가체문화가 ‘확대’라는 공통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머리꾸밈의 확대현상이 사치만이 아닌 내면적 동인의 발로라는 시각을 견지하였다.
동아시아 여성의 과도한 머리꾸밈은 전통사회 위정자들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하여 유행을 막고자 하였으나 퇴행하지 않았다. 여성의 ‘작은’ 저항(Chung, 2011)이 기존의 질서에서 진전된 성과를 이루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1. 확대감이 주는 ‘자기 권위’

확대는 사전적 의미로 늘려 크게 함을 의미한다. 확대는 인간이 예술적 조형의지를 표출하는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모티브로 알려져 있으며 내면의 형상화와 자아의식의 표현수단으로 널리 활용되어 왔다(Sung & Lee, 2004). 확대된 조형물에서 느껴지는 미감을 확대의 미라고 한다.
인체에서 확대의 미는 인체의 특정 부위를 변형하고 왜곡시킴으로서 파생되는 예술적 감각 중 하나이다. 인체와 연관되어 복식에서는 각각의 부분을 응용, 재구성, 해체 등의 방법으로 인체를 새롭게 해석하고 확대시켜 기존의 고정관념을 깬 새로운 복식양식을 창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어 왔다(Kim, 1997). 특히 전통복식에서 특정 부분을 과도하게 확대하고 이를 통해 공간의 양감을 확보했던 것은 착용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수단으로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확대된 복식은 확대의 미감 그 자체를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확대된 공간이 강한 인상을 줘 상대에게 착용자의 권위와 위엄으로 전달되었다.
다시 말해 공간의 양감확보는 확대감을 일으키며, 확대의 미감은 복식미 중 하나로 정의된다. 특히 수직적 확대는 사람의 신장과 관련된 양적과장 심리이다. 길이 방향으로의 양적과장은 위엄과 권위를 갖추기 위한 심리표현인 것이다(Kim, 1998). 확장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주체는 오히려 확장된 대상에 압도되지만 동시에 자기를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확장 즉 양적과장 복식은 복식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연장함으로써 자아확대와 동일시된다고 생각하게 되며, 당연히 인간의 기본욕구인 자기 존중감이 확보된다고 느낀다.
동아시아 여성의 가체가 확대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확대의 미감을 통해 자기 권위를 찾기 위한 내면의 표현이었다. 가체문화에서 확대에 대한 미의식은 머리카락이 갖고 있는 양감(量感)을 과하게 강조하여 내적인 심리를 표현함과 동시에 인체 고유의 형태와는 관계없이 나타나는 형태감의 특별한 강조 현상이었다.
조선의 가체는 양감을 통해 확대되었다. 청이 기계나 에도의 마게의 양감은 형태적 확대에 비중을 두고 있어 무게감이 다르다. 인모만을 사용한 조선의 얹은머리는 실제로도 무거웠지만, 두상의 상하, 좌우로 땋아 올려진 시각적 무게감이 청의 기계, 에도의 마게와 달랐다. 청의 기계는 견직물을 사용하여 가벼웠으며, 에도의 마게 역시 머릿기름과 지지대를 이용하여 속은 비고 겉만 확대된 양상이 조선의 얹은머리와 다르다. 확대가 주는 무게감과 그로 인한 자기 권위는 조선의 얹은머리가 단연 높았다.
이렇듯 가체를 통한 확대는 외형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내포하는 내재적 정신과 감정의 발현체로 인식된다. 특히 두상은 신체의 제일 윗부분에 있어 인간이 천혜(天惠)를 받고 전달할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하였고 이러한 생각은 점차 머리카락 자체가 신성하다는 신념으로 바뀌었다. 일본의 머리카락을 뜻하는 카미(かみ)가 천상을 의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Amino, 2017). 동아시아 여성의 머리모양에 대한 관념도 이와 다르지 않다. 머리모양에 권위를 부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자기 권위와 연결되었다.

2. 과시와 ‘자기 만족’

전통사회 동아시아 여성은 유교적 가치관에 오랜 기간 예속되었다. 조선의 여성은 시집살이라는 혼인제도로 인해 정체성의 기반이 자신이 아닌 남편 가문의 며느리에서 비롯되어 부정적인 여성의식으로 귀결되었다(Kim, 2008). 청대 중국 여성의 삶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아 전통적 예교인 삼종지도(三從之道)나 남녀내외(男女內外)의 구분으로 여성을 속박하여 왔다. 일본에서는 여성에게 검소와 실용을 강조하였으며, 무사들의 남성적이고 무력적인 미를 숭상하였다. 여성은 혈통도 인정받을 수 없었고 아기를 낳는 도구이자, 남편의 아이를 양육하는 유모였다. 여성의 권리나 인격이 존중받지 못하였다(Kim, 2016).
그러나 18~19세기 동아시아 여성은 사회적 약자에 머무르지 않았다. 과시는 인간의 기본욕구로, 자랑하거나 뽐내어 보이는 것을 말하는데 과시에는 실제보다 과장되거나 크게 보이려는 심리가 깔려있다. 과시적 소비는 지위나 부를 드러내기 위해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한다는 의미로 소비대상의 상징을 통해 신분상승, 지위획득과 유지를 목적으로 타인에게 부를 과시할 수 있는 복식아이템을 구매하고 사용하는 것이다(Park, 2001). 18~19세기 동아시아 여성의 가체문화도 과시적 관념에서 해석된다. 과시 행위를 위해 소요되는 과소비적 비용은 스스로의 만족으로 보상받게 된다. 만족은 심리적인 측면에서 마음에 흡족함을 뜻하며 자기만족은 자신이 경험한 희생에 대해 적절하게 보상받았다고 느끼는 인지적 상태를 이른다(Bea, 2009).
조선의 가체는 특정신분이나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귀천을 구별할 수 없었고, 가체만으로 신분을 구별할 수 없으니 크게 하는데 치중하였다. 가체의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인모의 공급이 따르지 못해 체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기형적인 양식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청의 기계 역시 크게 하는데 집중되었다. 삽식된 꽃장식은 더욱 크고 화려해졌으며, 금, 은, 대모로 만들어진 머리장신구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에도의 마게는 역사상 일본 여성의 머리양식 중 가장 화려하였는데 종류가 수백종에 이르렀다. 18세기 말경부터는 마게를 스스로 할 수 없을 만큼 확대되어 이용 도구를 휴대하고 집집을 돌아다니는 여성 이용사에게 많은 비용을 지불하였다(Aramata, 2000). 대모갑(白甲, 바다거북과 대모의 배갑인판의 표면을 싸고 있는 얇은 반투명층)으로 만든 비녀는 10여개를 꽂기도 하였다.
한편 가체는 여성성을 과시한 현상이었다. 머리모양에서 성적 표현은 복식에 나타났던 관능성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머리모양이 확대되면서 여성성이 부각되었다. 두상이 위엄, 권위, 신분우월의 상징으로만 인식되어 왔던 기존의 관념에 성적인 의미가 더해진 것이다(Kim, 1998). 유교적 가치관에서 성적 어필은 천박한 관념이었으나 18~19세기 가체문화는 관능성을 자연스럽게 추구되었다. 당시대 여성은 풍성한 머리카락으로 여성미를 발산할 수 있게 되었고, 확대와 과장을 통해 여성성을 과시하게 되었다. 가체를 통해 여성의 특정한 부분을 강조함으로서 에로틱한 신체의 곡선미를 나타내주었고 여성의 곡선을 인위적으로 과장하여 관능성을 표현하였다(Kim & Kim, 2004).
18~19세기 조선의 체, 청과 에도의 머리장신구는 신분 과시와 부의 과시가 가능하였고(Ha, 2015) 가체로 인한 관능성이 부각됨으로써 더욱 확대되었다. 사회적 약자로 불안정하기만 했던 여성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보상 받았다는 심리적 자기 만족과 여성성을 어필하고 개성을 표출할 수 있게 되면서 가체의 부피는 기형적으로 커져만 갔다.

3. 사회의 주체로, ‘자기 찾기’

복식의 대유행, 새로운 트렌드는 언제나 강한 저항을 받는다. 저항을 이겨내지 않은 복식유행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풍에 가까운 대유행은 그만큼 더 큰 저항에 직면하였다. 특히나 전통사회 동아시아의 여성은 사회적 지위가 낮고 활동범위가 제한적이어서 공동체에서 복식의 대유행은 쉬운 여정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18~19세기 동아시아 여성의 가체문화는 혁신이었다. 여성이 피동적인 입장에서 탈피하여 의견을 개진하고 사회의 저항과 맞서면서 타협과 조율을 했다는 반증인 것이다.
여성이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의식변화를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15세기 중반 서양세력이 동양에 진출한 이후, 그 여파가 18~19세기 동아시아 전역에 미쳤기 때문이다. 서양세력의 동양진출은 소총의 전래로 인한 전법 등 군사, 과학기술 등 정치, 사회적 변화를 비롯하여 천주교의 전파로 인한 사상, 종교적 갈등, 신문물에 대한 반향 등 인식과 사고의 범위에서도 광범위한 영향을 주었다(Amino, 2017).
조선의 천주교 전래는 여성이 맹목적인 순종과 정절을 강요당할 대상이 아니며 남자의 예속물이 아닌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라는 사상을 고취시켰다. 양반, 중인, 평민, 천민 등의 차이를 두지 않았고 종교의식이나 전도활동을 통한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기회가 늘었다(Lee, 2005). 여성의 직조 활동을 차치하더라도 조선의 여성들이 사회경제 변화에 앞장서고 있었다. 신윤복의 어물장수 풍속도에서는 행상하는 여인도 볼 수 있다. 청대 여성은 전족과 문맹, 결혼관습 및 유교적 이념으로 종속적 관계의 지위에 있었다. 전족을 하고 집안에 있는 여성은 소소한 가정일이나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성적 대상으로 다뤄지기 일쑤였다(Min, 2009). 중국의 선교사들은 전족의 악습을 바로잡고자 여러 활동을 벌였고 19세기에는 본격적으로 전족 해방운동이 전개되었다(Lee, 2014). 일본에서 18세기에 크게 발달한 섬유산업은 모두 여성 노동에 의해 뒷받침되었고 상인에게 판매하는 일에도 여성이 기여하는 바가 컸다. 따라서 여성이 화폐, 동산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다. 돈이나 집안의 재산에 대해서도 독자적인 권리를 갖고 있었다.
18~19세기 조선의 가체는 형태와 모양을 여성 스스로 창출하고 트렌드를 만들 수 있었다. 형태, 소재, 색상 등 계층별로 분화되었던 복식요소가 적용되지 않은 유일한 분출구였다. 청의 기계 역시 신분별 구분이 없었고, 에도의 마게는 유녀, 가부기 연희자, 다이묘의 시녀 등 낮은 신분의 여성이 자신의 이름을 딴 머리모양을 유행시켰다. 유행의 중심에서 여성이 주체가 되었다.
여성도 한 인격체로 개인이 지니는 욕망에 긍정하고 분출할 수 있는 주체적 인간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는 가운데 가체문화가 성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유교사회가 요구했던 부당한 처우가 저항인식을 키웠고, 자기의 욕구를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며 개성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여성 내면의 자기 찾기는 가체문화라는 하나의 방법으로 외형을 드러냈던 것이다. 동아시아 여성의 가체문화는 사회의 주체로 나아가는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결론

본 연구는 18~19세기 동아시아 가체의 유행현상이 여성의 내적 동인에서 비롯되었다는 관심에서 그 의미를 분석하였다.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18~19세기 동아시아의 여성은 가체를 통한 확대를 자아 연장과 동일시하였고, 자기 존중감이나 존경의 욕구를 표출하는 기표로 사용하였다. 18~19세기 동아시아 여성의 머리꾸밈이 가체를 통해 확대라는 공통된 미감으로 표현된 것은 결코 우연적 현상이 아니었다. 18~19세기 동아시아 사회의 대변환 시기에 공통적으로 포착되는 사회문화적 동인이 여성의 머리꾸밈을 통해 확대라는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확대된 가체는 수직적 확대이자 외적인 신체확장으로 자기 권위를 높이고 능동성을 갖게 해주는 행위였다. 동아시아 여성의 가체가 확대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확대의 미감을 통해 자기 권위를 찾기 위한 내면의 표현이었다. 가체의 과도한 확대감이 18~19세기 여성에게 부족했던 권위를 부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머리모양의 확대감은 내적 외적으로 스스로 일으켜 세운 자기 권위를 대신하였다.
둘째, 과시를 통한 자기 만족이 여성의 자기 정체성과 연결되었다. 여성의 지위상승과 확보를 위해 신분, 부의 과시, 여성성의 과시 등이 복합되어 과소비되었으나 여성은 유교질서에서 희생되었던 것에 대한 내면적 보상이 충족되었다고 느끼는 만족적 경험으로 유행의 열풍을 이어갔다. 따라서 동아시아 여성의 가체문화는 과시적 관념에서 해석되었다. 가체는 신분, 부의 과시가 가능하였고 사회적 약자로 불안정하기만 했던 여성 자신의 지위를 보상 받았다는 심리적 만족감이 더해지면서 18~19세기 동아시아에서 기형적으로 커져만 갔다. 또한 가체문화는 여성성을 과시한 현상이었다. 머리모양이 확대되면서 성적인 의미가 주어졌으며 세속적인 관능성을 표현하면서 여성 자신에게 심리적 만족감을 갖게 했다.
셋째, 여성이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18~19세기 동아시아의 사회문화적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 조선의 천주교 전래와 중국 선교사의 역할이 컸으며, 상공업 발달은 여성이 자기 찾기를 하는데 중요한 기폭제가 되었다. 18~19세기 동아시아 여성은 사회적 주체로 입지를 넓혀가는 과정에서 복식유행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전통적으로 복식이 통치의 수단, 규범으로 관리되던 관습에 여성은 저항하였고, 트렌드를 만들어 유행을 일으키는 주체로 발돋움하였다. 또한 기녀와 유녀 등 공적영역의 주체로서 역할이 증대되었다. 일반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나고 가정, 시장경제에 기여하는 등 여성이 사회의 주체로 점차 인식되었다. 아울러 교육기회의 확대로 여성이 문화창조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전족, 문맹, 유교적 여성관에서 탈피하여 교육, 문화, 경제력 등에서 자기 찾기를 추구하였다. 여성 내면의 자기 찾기는 가체라는 하나의 방법으로 외형을 드러냈던 것으로 동아시아 여성의 가체문화는 사회의 주체로서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Declaration of Conflicting Interests

The author declares no conflict of interest with respect to the authorship or publication of this article.

Acknowledgments

This work was supported by the Asia Culture Center(ACC-2018-RF-08).

Table 1.
Timeline of East Asia in the 18th and 19th Centuries
Year 1700 1720 1740 1760 1780 1800 1820 1840 1860 1880 1900
Joseon dynasty Mt. Baekdu national boundary monument (1712) Establishment of Kyujanggak (1776) Appearance of Donghak (1860)
Execution of catholics & prohibition of western books (1783) Sinmi Yanyo (1871)
Catholic baptism on Lee Seung-hoon (1784) Treaty of Kanghwa (1876)
Prohibition of western learning (1786) Imo military revolt (1882)
Establishment of rules that banned female wigs (1788) Gapsin coup and reorganization of clothing regulation (1884)
Shinhae persecution (1791)
Prohibition of catholicism (1801) Agwanpacheon (1896)

Quing dynasty Protection of tibet in the qing dynasty (1720) White lotus rebellion (1796-1804)
Prohibition of christian propagation (1723) Opium war (1840-1842)
Enthronement of emperor Qianlong (1735) Treaty of tianjin (1858)
Westernization movement (1860)
Taiping rebellion (1864)
Sino-French war (1884)
Sino-Japanese war (1894)
Treaty of shimonoseki (1895)

Edo period Translation of Rangaku (1770-1774) Commodore. Matthew C. Perry's arrival in Japan (1853)
Treaty of amity and commerce between Japan and the United States (1858)
Meiji restoration (1868)
Table 2.
Change of Eonjeun-meori(rolled hair around the head or put up) in the Joseon Dynasty
Before the 18th century 18th to mid-19th century
Type fer-57-3-395i1.jpg fer-57-3-395i2.jpg fer-57-3-395i3.jpg fer-57-3-395i4.jpg
Figure 1-1 Figure 1-3 Figure 1-5 Figure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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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2 Figure 1-4 Figure 1-6 Figure 1-8

Figure 1-1. Reprinted from H0-Am Art Museum (1999).

Figure 1-2. Reprinted from Jeon (2008).

Figure 1-3. Reprinted from Pyo (2019).

Figure 1-4, 5, 6, 8. Reprinted from Korea JoongAng Daily (1985b).

Figure 1-7. Reprinted from Korea JoongAng Daily (1985a).

Table 3.
Change of Gigye(hair on the top, divided, combed at the top to make two flat hair buns on both sides) in the Qing Dynasty
Before the 18th century 18th to 19th century
Type fer-57-3-395i9.jpg fer-57-3-395i10.jpg fer-57-3-395i11.jpg fer-57-3-395i12.jpg
Figure 2-1 Figure 2-2 Figure 2-3 Figure 2-4

Figure 2-1. Reprinted from Zhou & Gao (1988).

Figure 2-2. Reprinted from Li (2005).

Figure 2-3, 4. Reprinted from Ceng (2002).

Table 4.
Change of Mage(rolled hair in a bun) in the Edo Period
Before the 18th century 18th to mid-19th century
Type fer-57-3-395i13.jpg fer-57-3-395i14.jpg fer-57-3-395i15.jpg fer-57-3-395i16.jpg
Figure 3-1 Figure 3-3 Figure 3-5 Figure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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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3-2 Figure 3-4 Figure 3-6 Figure 3-8

Figure 3-1. Reprinted from Izutsu (2004).

Figure 3-2. Reprinted from Ohara (2008).

Figure 3-3, 4, 5, 7, 8. Reprinted from Takako (2007).

Figure 3-6. Reprinted from Tanaka (2017).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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